합판산업의 대부
원목을 얇게 오려내고 이것을 섬유방향이 직교하도록 겹쳐 붙인 합판은 1936년 대성목재 공업사를 효시로 출발하여 정부의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의 추진과 국내 건축경기의 호조 등에 힘입어 급격히 성장하여 왔다.
강석진 회장은 세계 최대의 합판상사를 경영하면서 60년대와 70년대 초 한국 수출을 주도해 왔다. 따라서 그는 한국 합판 산업의 발전을 일궈 낸 합판산업의 대부(代父)라 칭한다. 합판산업은 1964년 수출특화산업으로 지정되면서 연평균 30% 이상의 높은 수출증가율을 보였고 총생산량의 70∼80%를 수출하는 유망한 업종이 되었다.
1964년 제 1회 수출의 날부터 우리나라 수출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수많은 공로훈장을 받아 온 것처럼 그의 수출공로는 국가경제 성장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정부에서 수출 최고상 제도를 만들어 수여함에 따라 1968년부터 3년간 국내 수출 제 1위를 계속 기록하였고 한동안 한국 수출왕으로 군림하기도 하였다. 동명목재의 최대 수출실적은 1977년의 100,350,000 달러로서 단일 품목으로는 국내 최대의 수출 규모였다.
그는 합판업계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 합판업계의 모든 애로를 해결해 주기도 하여그의 아낌없는 후원은 지금도 합판업계 인사들 사이에서 미담으로 남아있다.
우리 나라는 전체 산림면적이 국토의 넓이에 비하여 많은 데도 임목축적(林木蓄積)은 임업선진국에 비하여 대단히 빈약하여 목재 수요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었으며 합판제조용 원목은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석진 회장이 국내 합판산업에 남긴 공로는 지대한 것이었다. 우선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하여 합판을 수출 주종상품으로 키웠다는 점을 들 수 있으며 또 원목 수입선 다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원목의 안정적인 확보에 큰 공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는 합판업계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 합판업계의 모든 애로를 해결해 주기도 하여 그의 아낌없는 후원은 지금도 합판업계 인사들 사이에서 미담으로 남아있다.
동명목재는 이러한 수출경기와 내수판매로 매년 40% 이상의 신장률을 나타내었고 종업원만도 7,000여명에 달했으며 1일 생산량 17만장(1974.3 현재)의 합판생산시설을 갖춘 세계 최대의 합판회사로 당당하게 서게 되었다. 월간능력으로 라왕합판이 135,500M, 라미나합판 20,300M, 투명도장합판 41,000M, 답프합판 1,2000M, 미장합판 250,000M, 제재품 9,000㎥ 등을 생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