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종교관
물자를 아끼는 데는 네 것 내 것을 가리지 않는 유별난 습성이 있었으나, 유독 사회에 대한 투자와 불우한 계층에 대한 지원에는 재산을 아끼지 않았으며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다. 동명의 이러한 행적은 불교에 귀의하면서 깨우치게 된 자신의 재산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는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명의 사회활동은 뭇사람이 칭송하는 아름다운 이름을 탐내어 억지로 실천한 것이 아니라, 불법이 제시한 보시정신에 입각한 생활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동명은 종교의 본령을 사회에 대한 희생과 봉사로 보았다. 사회는 민중의 집합체이며, 따라서 민중의 존재를 바탕으로 국민총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경영자는 노동자를 윤리적인 차원에서 대우해야 하며, 종교계의 관심사는 사회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민중을 계도하는 것이며, 불법호지는 대중의 화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동명의 종교관이 사회적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현실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루어 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동명은 불교의 교단에서도 사회에 참여하여 민중 속에 들어가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동명이 기업을 통하여 얻은 이윤을 다시 사회사업에 출자하여 자신을 키워 준 향토의 발전을 위해 힘쓴 노력은 소유의 집착을 버리고 무소유의 공덕심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동명의 사고방식은 전통적인 한국의 효사상에도 미치고 있다. 그가 설립한 동명불원 경내에 효자 효부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덕망탑(德望塔)과 부적탑(婦德塔)은 남자의 덕망과 여자의 부덕을 상징하고 있다. 즉 모든 선남선녀가 불법에 귀의하여 덕망과 부덕을 닦아야 한다는 뜻은 전통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불교를 일상적인 생활에 도입한 문자 그대로 생활불교의 철학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동명불원을 '조국통일의 정신적인 안식처'라고 정의한 데서 호국불교에 대한 그의 믿음이 드러나고 있다. 동명은 기업의 발전이 곧 국가의 발전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개인이나 기업의 권리나 주장보다 국가의 필요와 당위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이러한 정신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회적 봉사와 희생을 끊임없이 추구하였다.
그는 우리 민족사에 나타나는 호국불교의 전통을 현재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분단의 상황에 적용시켜 비극적 현실을 타개하는 지혜로 삼으려 하였다. 동명은 호국 안보의 정신을 확립시키기 위하여 군내 불교포교와 군승활동 지원을 후원하면서 국군의 정신력을 강화하고 분단조국의 안보를 강화하려 하였다. 육군의 불교 군종사찰인 군수사 금련사와 진해 해군사관학교의 호국사 건립을 추진하면서 동명이 쾌척한 돈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 실로 엄청난 액수였다. 동명은 선열들의 호국 정신을 본 받아 국군 장병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따라 살신성인하는 호국불교를 실현하여 조국의 안녕과 번영을 이루려고 하였다. 동명의 불교에 대한 신심은 종교적 신앙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유사시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정신을 계발하려는 호국불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동명의 불교관은 승속의 구별 없이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따라 스스로 마음을 깨닫는 것이었다. 그의 불교정신은 생활 속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며, 특히 유교의 효사상을 불교의 정신에 접목하여 부모가 있는 사람이면,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종교관이었다. 그는 재가불자의 길을 걸으며 불교의 기본적인 정신인 자비의 마음으로 보시공덕에 전심하였다. 그는 호국불교 정신의 구현과 불우한 이웃과 청소년을 위한 사업으로 대승의 불심에 입각한 무소유의 보살행을 실천하였다. 동명은 종교의 본령을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보았으며, 동명의 종교관은 사회적 화합을 목적으로 하는 현실적 사고의 결과였다. 그는 불교의 생활화를 추구하면서 산업사회의 도덕적 실천 명제인 인간성 회복은 "불교의 대중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동명의 생활불교 철학은 그의 만(卍)자철학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기술자의 안목으로 만(卍)자가 지닌 조형적 · 역학적 원리를 7개조의 신조로 정의하였다. 공평(公平)·정심(正心)·직립(直立)·존립(存立)·통할(統轄)·정성(精誠) · 원만(圓滿)으로 요약할 수 있는 만자 철학은 공평무사(公平無私)·정도정행(正道正行)·최선궁행(最善躬行) · 불편부당(不偏不黨)·일심단결(一心團結)·정신일도(精神一到)·매사능통(每事能通)의 인생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는 불교의 생활화를 통하여 국가와 사회발전의 정신적 계기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동명의 일생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그가 생전에 그렇게 믿고 사랑한 나무에 대한 애착으로 시종일관 목재사업에 투신한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그의 성실한 성품과 절도 있는 생활태도는 결국 그를 한강 이남의 최고 재벌로 성장하게 하였다. 광복이후 한국 경제는 수 차례 위기를 거듭하면서 현재 세계적인 무역대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처음부터 무역을 통한 경제입국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오로지 수출정책으로 일관했다. 한국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동명의 합판수출로 그 서막을 열었다. 동명은 현대 한국경제의 견인차가 되어 오늘의 번영을 이루는 공로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경제인으로서의 동명이 추구한 그의 인생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소유한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보지 않고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해 산재투척한 사회사업가로서의 인생이다. 그는 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그의 사회적 입장은 기업가이자 부산 지역의 유수한 재산가였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보편적 현실과 유리된 재벌의 특수한 삶이 아닌 현실에 입각한 보통 사람의 정신으로 일생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소시민의 소박한 사고방식과 현실적 문제 해결 방식을 따라 행동하였다. 동명은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자신의 재산으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신념에 따라 그는 일생을 통해 수많은 사회사업의 업적을 이루었다.
불교의 기본적 교리는 어디까지나 중생의 구원과 이타적인 보살행을 근간으로 한다. 생전의 동명이 행한 수많은 사회사업은 이러한 이타정신과 보살행의 결과이다. 보살행은 진실로 대승의 본질이며 불자로서의 종교적 의무이다. 동명이 일생을 두고 이룩한 수많은 불사와 철저한 효의 정신은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중생들에게 전하여 생활화하게 하고, 인연의 묘리를 신앙하여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혜안은 속인들의 단순한 지혜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깊은 통찰력과 혜안은 앞선 자의 고유한 지혜인 것이다. 불자로서의 진정한 자세는 소유에 대한 집착을 끊고 무소유를 실천하며, 이기를 부끄럽게 여겨 이타를 몸소 행하고, 어리석은 미혹에 빠져 허망한 이름을 탐내지 않는 대승의 진실한 보살행을 행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동명의 보살행은 참으로 대승적 진리의 구현에 부끄럽지 않는 한 떨기 연꽃과 같은 귀감이었다.